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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생산: 우리동네옆집

  • 작성자 사진: O Kim
    O Kim
  • 9월 1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월 14일

제주 단독주택 전경

공간의 생산: 파괴로부터의 출발


건축은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터 위의 흔적을 지우며,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는 일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기반한 많은 의미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곧 건축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들로 실현되는 건축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기존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이렇게 건축이 소멸을 전제로 하는 생산이라면, 그 결과물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움은 건축가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주변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므로 건축은 주변의 삶과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들의 인식 속에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벽돌 담장의 해법

우리동네 옆집: 경계 짓는 방식 설정하기


건축의 아름다움은 추상적 미감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리동네옆집'은 아름다움의 언어를 새로운 조형에서 찾기보다 이미 그 자리에 뿌리내린 익숙한 경계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낮은 밀도로 드문드문 현대식 집들이 놓인 길을 기준으로, '우리동네'라는 모두의 인식을 위해서 시작된 경계 짓기 방식에 대한 탐구이다.


구도심에서 관찰되는 여러 방식 중 가장 친근한 해법은 1980~90년대에 보편화된 벽돌 담장이었다. 이는 물리적 경계에서 나아가 일상의 기억이 저장된 구축물에 가깝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는 자리에 친근한 옛 담장을 불러오는 일은,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며 공동체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건축적 장치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곧, 건축이 경계를 세우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와 맺는 거리를 스스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 장인을 통해 구현되었다. 오랜 세월 벽돌을 다뤄온 장인의 손길에 의해 옛 방식의 담장을 쌓아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뜨거운 여름날에도 묵묵히 정성스럽게 곡선의 경계를 채웠고, 그 과정에서 녹아든 그의 태도와 기술이 하나의 구축물로 완성되었다. 그와 함께 디테일을 하나하나 협의하며 완성해가는 과정은 참으로 우아한 생산 방식이었다. 이는 생산을 위한 생산과 달리, 장인의 태도와 녹진 시간 속에서만 구현가능한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방식은 건축가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장인의 기술이 빚어내는 예상치못한 디테일은 건축가로 하여금 생산 방식에 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하며, 건축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관계와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해 가는 일은, 동시에 건축가 자신의 삶을 소진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각 건축물에는 건축가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지만, 그 시간이 언제나 의미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기존의 생산 방식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생산을 모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건축을 생산하는 일은 곧 모두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이기에 ‘우리동네옆집’은 일상의 관계 속에서 건축이 어떻게 삶의 태도로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으로 자리한다.






Written by Copywriter Sihi Kim

(주)김오건축사사무소




댓글 1개


j-h o
j-h o
9월 11일

강렬한 첫문장으로 시작해 공동체의 기억과 손길, 건축가의 태도와 삶의 방식으로 귀결되는 깊이 있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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