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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생산: 우리동네옆집

2025년 9월 11일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6일


공간의 생산: 파괴로부터의 출발


건축은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터 위의 흔적을 지우며,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는 일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들로 실현되는 건축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기존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집 한 채가 들어서면, 오래 보아 온 풍경에 낯선 윤곽이 더해진다. 그 안에 새로운 일상이 자리 잡는 동안, 골목을 오가던 눈에도 조금씩 다른 풍경이 익어 간다. 담장의 높이, 길에서 보이는 창, 대문 앞에 남겨진 자리까지, 새 집의 여러 결정은 대지 밖의 일상에도 닿는다. 도면에 대지의 경계는 그을 수 있어도, 집이 바꾸는 풍경은 그 선 밖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건축이 소멸을 전제로 하는 생산이라면, 그 결과물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움은 건축가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주변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므로 주변의 삶과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들의 인식 속에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건축의 아름다움은 추상적 미감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 아름다움을 이 집에서는 길과 맞닿은 경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동네옆집’은 아름다움의 언어를 새로운 조형에서 찾기보다 이미 그 자리에 뿌리내린 익숙한 경계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낮은 밀도로 드문드문 현대식 집들이 놓인 길을 기준으로, ‘우리동네’라는 모두의 인식을 위해서 시작된 경계 짓기 방식에 대한 탐구이다.




우리동네 옆집: 경계 짓는 방식 설정하기


구도심에서 관찰되는 여러 방식 중 가장 친근한 해법은 1980~90년대에 보편화된 벽돌 담장이었다. 이는 물리적 경계에서 나아가 일상의 기억이 저장된 구축물에 가깝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는 자리에 친근한 옛 담장을 불러오는 일은,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며 공동체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건축적 장치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곧, 건축이 경계를 세우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와 맺는 거리를 스스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길과 집 사이에 이 여러 겹의 자리를 두면서, 밖에서 보이는 경계와 안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다루고 벽돌 담장의 익숙함도 이 집의 진입과 마당에 맞는 형태를 얻는다.

벽면과 벽돌 담장, 돌담과 나무 대문은 서로 가까이 놓인다. 비슷한 색으로 묶이는 재료도 표면의 거칠기와 재료의 단위가 다르고, 맞닿는 재료에 따라 드러나는 표정이 달라진다. 모형과 실제 견본을 함께 놓는 일, 현장에서 벽의 크기와 견본의 표면을 함께 보는 일은 이런 관계를 다른 크기에서 살피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 장인을 통해 구현되었다. 오랜 세월 벽돌을 다뤄온 장인의 손길에 의해 옛 방식의 담장을 쌓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뜨거운 여름날에도 묵묵히 정성스럽게 곡선의 경계를 채웠고, 그 과정에서 녹아든 그의 태도와 기술이 하나의 구축물로 완성되었다. 그와 함께 디테일을 하나하나 협의하며 완성해 가는 과정은 참으로 우아한 생산 방식이었다. 이는 생산을 위한 생산과 달리, 장인의 태도와 녹진 시간 속에서만 구현 가능한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도면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곡선은 현장에서 여러 장의 벽돌과 그 사이의 줄눈으로 만들어진다. 장인의 손을 거쳐 구체화되는 디테일에는 도면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결이 있다. 그 차이는 건축가가 자신의 생산 방식을 돌아보게 하고, 건축을 완성된 형태뿐 아니라 그 형태를 만들어 가는 관계와 과정 속에서 이해하도록 이끈다.


집을 만드는 동안 건축가의 판단은 여러 크기를 오간다. 집과 주변을 함께 보고, 재료를 살피고, 도면의 선이 실제 벽으로 쌓이는 과정은 공동의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

또한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해 가는 일은, 동시에 건축가 자신의 삶을 소진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각 건축물에는 건축가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지만, 그 시간이 언제나 의미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기존의 생산 방식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생산을 모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건축을 생산하는 일은 곧 모두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이기에.






Written by Jihee Kim

(주)김오건축사사무소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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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1일

강렬한 첫문장으로 시작해 공동체의 기억과 손길, 건축가의 태도와 삶의 방식으로 귀결되는 깊이 있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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