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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전시를 한다는 것: <제주체-김석윤 건축전> 큐레이터 이야기
김지희 큐레이터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김석윤 건축전 전시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4월 12일4분 분량


터에 대한 논의 - 근대 건축물 보존
근대와 로컬의 해체 존재된 것이 사라지는 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 가를 묻는다. 본 글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소멸한, 그러나 여전히 보존의 가치를 지닌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다. 근대가 현대에 남긴 상징성과 의미, 그리고 보존 가치에 대한 논의와 그 범위(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다양한 시선들이 혼재한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는 근대화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근대화를 위해 버려져야 했던 것은 로컬(Local)이었다. 근대화가 기존의 연결고리들을 모두 없앤 후 재구성한 이 영토에는 원주민적인 것도, 토착적인 것도, 원시적인 것도 없다. 로컬[근대화 이전의 로컬]은 비교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반-글로벌(anti-Global)을 의미한다.” 라투르의 지적처럼 근대화는 로컬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었다. 전통(토착·지역적 의미)과 현대 사이에서 전통적 가치관을 재편하고 현대 사
2025년 9월 12일3분 분량


공간의 생산: 우리동네옆집
공간의 생산: 파괴로부터의 출발 건축은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터 위의 흔적을 지우며,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는 일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들로 실현되는 건축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기존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집 한 채가 들어서면, 오래 보아 온 풍경에 낯선 윤곽이 더해진다. 그 안에 새로운 일상이 자리 잡는 동안, 골목을 오가던 눈에도 조금씩 다른 풍경이 익어 간다. 담장의 높이, 길에서 보이는 창, 대문 앞에 남겨진 자리까지, 새 집의 여러 결정은 대지 밖의 일상에도 닿는다. 도면에 대지의 경계는 그을 수 있어도, 집이 바꾸는 풍경은 그 선 밖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건축이 소멸을 전제로 하는 생산이라면, 그 결과물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움은 건축가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주변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므로 주변의 삶과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들의 인
2025년 9월 11일2분 분량


제주생활자(Jeju-dweller)
사유의 시작: <2024 제주건축대전> 주제 발제를 준비하며 건축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건축의 정의와 그에 대한 태도를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건축은 거주자의 특정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거주는 머무는 행위를 기반하므로, 모든 건축은 거주를 위한 환경이 된다. 이는 짧게 머무는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승강장까지 포함하며, 그 시간동안 몸으로 맞닥뜨리는 일련의 조건들을 포괄한다. 건축은 작게는 일시적 공간, 크게는 지역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 환경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체계다. 우리는 환경이 제공하는 조건을 통해 공간을 감각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이러한 감각은 무의식적, 혹은 전의식적 차원에서 형성되며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문화, 지역성,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맞닿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는 나에게 중요한 환경이다. 제주 특유의 문화와 지역의 연구는 늘 흥미로운 주제로, 내가 생각하고
2025년 9월 10일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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