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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활자(Jeju-dweller)

  • 작성자 사진: O Kim
    O Kim
  • 9월 10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20일


사유의 시작: <2024 제주건축대전> 주제 발제를 준비하며


건축공모전 주제 발제를 준비하면서, 나는 건축의 정의와 그에 대한 태도를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건축은 거주자의 특정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거주는 머무는 행위를 기반하므로, 모든 건축은 거주를 위한 환경이 된다. 이는 짧게 머무는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승강장까지 포함하며, 그 시간동안 몸으로 맞닥뜨리는 일련의 조건들을 포괄한다. 건축은 작게는 일시적 공간, 크게는 지역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 환경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체계다.


우리는 환경이 제공하는 조건을 통해 공간을 감각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이러한 감각은 무의식적, 혹은 전의식적 차원에서 형성되며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문화, 지역성,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맞닿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는 나에게 중요한 환경이다. 제주 특유의 문화와 지역의 연구는 늘 흥미로운 주제로, 내가 생각하고 고민해왔던 것들을 소진시킬 수 있는 장(場)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제주 건축은 지역의 맥락과 무관하게 하나의 오브제로 환원되거나, 표피적 연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건축이 수행해야 할 근본적 기능 마저 소홀히 다루어진다.


제주다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익숙한 사고 틀을 넘어서는 건축적 사유를 요구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유하고, 이를 새로운 개념으로 엮어내는 일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찾기 위한 여정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건축의 방향은 시대적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요구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 개념을 설정하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가속화했다. 인간 활동이 제한되던 시기에 드러난 자연의 회복은,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 인식을 다시금 부각시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은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다. 이는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이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공론화된 개념으로, 지각 변동 및 생물종(Specie)의 변화 현상-지질학(생물학)적 개념에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현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논쟁을 넘어, 새로운 시대라는 용어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멸종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생태계에 미치는 인간의 강력한 영향력, 즉 무분별한 화석 연료 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의 급증 등에 의한 기후 변화, 바다의 산성화, 토양오염과 같은 환경적 변화에 의한 생물종의 멸종을 뜻한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시선이 아니라 “모든 종의 상생(相生)”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생활자라는 시선


그리하여 '제주생활자'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제주에서 상생하는 다양한 생물종과 건축적 실천을 연결하기 위한 시도로써, 인간의 거주 환경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많은 생물종 간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이 시간들이 모여 제주에서 실행되는 건축의 밀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발제한 공모전 주제는 '제주생활자: 새로운 공동체 모색’이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에 의해 종의 다양한 관계를 품고 있는 장소이다. 한라산과 바다, 곶자왈, 오름, 하천(건천)이 형성하는 고유한 환경은 다양한 종들의 관계망을 가능하게 한다. 제주는 모든 동물과 어류 · 꽃과 나무 · 곤충 · 아주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권을 보존하기 위해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확인하였다.


‘제주생활자’라는 용어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지구생활자’ 개념에서 착안하였다. 라투르는 인류를 더 이상 지구를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생태계와 얽혀 공존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나는 이 정의를 가져와 우리를 잇는 개념으로 활용하였다. 익숙해진 '공동체' 개념을 낯설게 만들어, 그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기 위함이다.


익숙하게 학습된 인간 중심의 사고를 잠시 중지(epoche)하고, 자신의 일상과 현재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과 생물종이 맞닿는 지점에서, 이제는 건축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한다. 다양한 종 간의 연결과 회복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건축, 즉 보전(conservation)에 대한 다양한 건축적 방식이 요구된다.


건축가의 시선에서 모든 종을 하나의 공동체로 해석하기 위해, 제주에 거주하는 모든 종을 ‘제주생활자(Jeju-Island Dweller)’라는 범주로 묶고, 이를 통해 상생이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것인지 혹은 주체를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더 큰 범주의 공동체적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제주생활자' 개념은 그 탐구의 출발점이다.




Written by Copywriter Sihi Kim

(주)김오건축사사무소


● 본 글은 「2024 제주건축대전 주제」 및 「월간제주건축 제75호」에 수록된 글을 바탕으로 다시 엮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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