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연구: 평평한 세계의 문턱에서
- O Kim
- 10월 2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월 14일
오늘날의 건축 환경은 점점 평평해지고 있다.
문턱은 사라지고, 계단은 경사로와 공존하며 바닥의 단차는 최소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내내 진행되어 온 현대 건축의 보편적인 어휘이다. 모더니즘 이후 기능과 효율을 추구하는 건축 사조, 입식 생활로의 전환, 시공의 합리화, 안전에 대한 인식 변화-이 모든 흐름이 겹치며 평평한 바닥은 지금의 표준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배리어프리(barrier-free) 운동은 이 경향에 명확한 근거를 부여했다. 1997년 「장애인등편의법」 제정 이후, 접근성은 법적 의무가 되었고 사회적 합의로 정착되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accessbility)를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한 결과이자 인간의 존엄과 포용성에 기반을 둔 사회적 합의이다.
그런데 질문이 남는다. 평탄화 이전의 건축 환경에는 불편함 외에 다른 것은 없었을까?
우리의 전통건축은 이 평평함의 논리에서 비껴 서 있다. 주로 ‘불규칙함’, ‘역동감’ 으로 언급되는 한국 건축은 울퉁불퉁한 표면의 계단, 대문의 문턱, 대청의 단차 등 진입부마다 놓인 단에 의해 몸은 순간적으로 멈추고 무게 중심을 옮기며 움직임에 대한 특정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경험은 단순히 '불편함'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우리의 전통건축은 경사로가 아니라 ‘단(段)’을 통해 진입한다. 단에 의해 발을 들어 올리거나 낮추며, 작은 높이 차에 미묘하게 몸을 움직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 단에 의해 건축은 감각의 전환점, 그리고 몸의 리듬과 자세를 조정하는 현상학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건축이 연속적으로 체험되는 것이 아닌, 단에 의해 한 단락을 이루면서 총체적인 시퀀스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은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장치이며, 우리의 시선과 호흡, 움직임의 속도를 조율하는 건축적 리듬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이 리듬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기능과 평등의 이름으로 몸의 불균형은 교정되었고, 멈춤의 시간은 효율성 속에 흡수되었다.
지면의 변화, 문턱의 높이, 마루의 단차는 우리가 있는 곳의 ‘안과 밖’을 감각적으로 구분짓는다. 몸은 단을 넘으며 자신의 위치를 재인식하고, 그 과정에서 몸의 기억은 장소의 기억과 연동된다.
몸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단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리듬은 어떻게 장소의 의미로 전환되는가.
한국 전통건축의 단은 물리적 높낮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몸이 경계를 인식하고 기억을 불러내며 움직임을 통해 장소를 새로 구성하는 장치다. 그 미세한 높이의 차이가 우리 건축의 정체성과 감정 구조를 어떻게 빚어왔는지, 현상학적 시선으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Written by Copywriter Sihi Kim
(주)김오건축사사무소
● 본 글은 저자의 논문 「에드워드 케이시의 신체/장소기억 개념으로 바라본 장소-경계 체험에 관한 연구」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짧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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