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전시를 한다는 것: <제주체-김석윤 건축전> 큐레이터 이야기
- O Kim
- 4월 1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3일
프롤로그: 제주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
제주 건축에 매료되어 이곳에 발을 붙인 지 12년이 되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제주 건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원동력은 제주 건축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곳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축적해 온 모두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 건축을 바라본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떤 판단과 태도가 선택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 건축의 흐름을 되짚고 기록하는 작업에 큐레이터로 참여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간 형성되어 온 제주 건축의 맥락과 이를 이어온 분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를 바탕으로 향토성-지역성 담론과 더불어 제주 건축사에 관한 많은 논문과 책, 기록 등 귀한 자료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제주 건축이 이곳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특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는 제주만의 독특한 건축 문화가 만들어져 온 과정, 나아가 ‘제주체’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1. 전시에서 ‘건축의 감동’을 모두에게 전하려면

건축이 작동하는 가장 근원적인 지점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일 것이다. 건축을 통한 감동은 대개 해석 이전의 상태에서 온다. 흥미롭게도 그런 공간에 들어서면 그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자신이 어떻게 흘러들어왔는지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정동, 몰입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며, 그 공간에 머무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순간으로 각인된다. ‘좋은 건축’은 종종 이런 순간에 놓인다.
김석윤 건축가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경험의 방식으로 기억된다. 애월체육관의 브리지 위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때, 공무원연수원에서 양쪽으로 뻗은 곡선 계단 아래에서 그 너머를 바라볼 때, 노을빛에 반짝이는 적십자회관의 은빛 타일을 마주할 때, 그리고 신제주성당이 그 자체로 만들어내는 압도하는 공간감까지. 이 경험들은 대부분 건축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는 특정 작품의 미학보다 건축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감동을 어떻게 전시의 형식 안에서 다룰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건축의 감동을 공공의 감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건축이 갖는 공공성, 일상 속에 놓인 건축이 갖는 본질적인 역할에 주목하며 건축을 모두가 경험하고 축적해 온 공공의 장(場)으로 불러오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2. 미술관에서 건축을 다루는 것의 의미

한국에서 미술관이 건축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특히 공공미술관에서 한 건축가의 건축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은 더욱 그렇다. 건축은 여전히 기술적 결과물이나 전문 영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예술의 영역에 곧장 닿기엔 거쳐야 할 과정이 아득히 느껴진다.
우리는 매일 건축 안에서 살아가며, 건축을 통해 도시와 장소를 기억한다. 미술관이 건축을 다룬다는 것은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잠시 분리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익숙함 속에 묻혀 있던 건축의 의미를, 일상적 경험을 감각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불러온다. 이를 통해 건축에 대한 공공의 이해를 넓히는 것이 이번 전시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다.
이번 전시는 공공미술관에서 열리는 초청 전시라는 점에 더해, 김석윤 건축가가 설계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건축가의 작품을 그가 설계한 공간 안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전시 공간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특별한 순간을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한자리에 모아, 지역의 문화로 형성되어 온 흐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장소이자 시민들에게 열린 자세로 그 맥락을 차분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현대미술관이다.
3. 제주체(濟州體)
이번 전시는 제주체(濟州體)를 주제로 한다. “예술에서 체(體)는 단지 스타일이 아니라 내적 체질로서의 개성을 말한다. 예술가에게는 특유의 미학적 체질이 있듯, 한 지역과 집단에도 서로 다른 성질이 있다. 집단의 것은 곧 문화적 형질이다. 체(體)는 한문의 ‘몸 체’자로, 내연이나 이면층에 앞서 형태 또는 외연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체(體)는 형태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의 사고층까지 포괄하는 총체를 의미한다.”
전시에서 말하는 제주체는 제주의 건축이 오랜 시간 어떤 조건 속에서 작동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판단과 태도가 반복적으로 누적되어 왔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제주체’라는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를 형성한 총체—자연 환경뿐 아니라 관광 개발과 행정 제도, 공공과 사적 영역의 경계, 그리고 삶의 방식이 서로 얽힌 사회적 조건—를 함께 바라보는 자리다.
여기서 말하는 제주체는 건축의 스타일-양식이 아니라 체질이다. 그것은 형태로 귀결되기보다, 땅과 기후, 제도와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 반복되어 온 선택과 태도의 축적이다. 김석윤의 건축은 이러한 제주체의 형성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그의 작업은 50년에 걸쳐 제주의 변화와 함께 만들어져 왔으며, 주거에서 다양한 공공건축에 이르기까지 제주 건축이 마주한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4. 김석윤의 건축과 제주 현대 50년
김석윤의 건축은 한 건축가의 작업을 넘어, 제주의 현대사가 공간으로 축적되어 온 과정을 가장 밀도 높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0년대 관광 개발의 시작 이후, 제주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어 왔고, 그의 건축은 그 변화 한가운데에서 주거와 공공, 일상과 제도를 가로지르며 만들어져 왔다. 김석윤의 작품을 따라가는 일은 곧 제주의 사회가 어떤 조건 속에서 건축을 만들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가 강조해 온 “건축은 땅의 논리를 따른다”는 말은 제주라는 풍토를 바라보는 건축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땅의 형국을 읽고, 좌와 향을 판단하며, 건축을 담기에 알맞은 여유를 가늠하는 일”로서 형태를 선택하기 이전의 과정들은 특정한 양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거, 공공건축, 종교시설 등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가운데 그의 건축에는 일관된 태도가 흐른다. 제도의 요구와 사회적 역할에 대응하면서도 놓지않는 것은 공공을 위한—사용자를 향한 배려이며, 이는 건축의 공공성이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야 하는 역할로 이해해 온 태도에서 비롯된다.
5. 전시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이 전시는 여러 겹의 단계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구조를 취한다. 관람자는 하나의 해답을 향해 곧장 나아가기보다 조건과 사유, 해석을 오가며 제주 건축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건축가의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실천과 축적을 거쳐, 현재의 질문으로 나아간다. 관람자는 이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제주 건축이 단일한 결과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 온 과정임을 체감하게 된다.
전시는 △프롤로그: 제주체를 시작으로, △배경: 건축 감각의 바탕 △만남 : 시대, 건축과의 만남 △실천: 사유에서 공간으로 △축적: 다시 장면들 △공명: 오래된 미래 6가지 장으로 구성된다. 많은 건축인을 작가로 초대해 현재의 건축을 함께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고, 건축과 타 예술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낯선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는 김지희 건축사와 제주에서 활동하는 영상 감독 및 무용가와 함께한 작품(문재웅 감독, 「건축이 몸에 닿을 때」, 10분)을 상영한다. 이는 몸을 매개로 건축을 바라보는 낯선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이다.
과거에 형성된 건축적 태도와 현재의 시대적 조건이 겹쳐지는 이 지점에서, 전시는 지금의 제주 건축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주 건축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전시는 그 사유의 여백을 관람자에게 건넨다.
6. 우리들의 커튼콜
언젠가 국립극장에서 무용 공연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건축에는 왜 커튼콜이 없을까. 하나의 장(Chapter)이 끝날 때, 커튼이 닫히는 그 찰나에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순간이, 왜 건축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이번 전시가 그 커튼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지금을 기록하는 자리이자, 건축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제주에서의 건축을 다시 사유해보는 자리로서 말이다. 어떤 성취를 선언하거나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도달해 온 시간과 태도를 잠시 멈춰서서 바라보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박수를 보내는 자리.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져 온 노력의 순간들이 이곳에 모여 조용하지만 분명한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제주에서의 건축은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우리들만의 커튼콜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Written by Copywriter Sihi Kim
(주)김오건축사사무소
● 본 글은 「월간제주건축 제89호」에 수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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